성령의 열매(3) 화평 (갈라디아서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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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3) 화평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3) 화평 (갈라디아서 5:22-23)

 

 세 번째 우리가 묵상할 성령의 열매는 바로 화평입니다. 화평이라는 말은 평화, 평안, 평강이라는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헬라어로는 '에이레네'라는 단어를 씁니다. 헬라어 에이레네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는 뭐가 있을까요?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단어입니다. 바로 ‘샬롬’이라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사할 때 ‘샬롬’하면서 인사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면 힘들고 고난한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샬롬’이란 말을 좋아해요.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사할 때 뭐라고 인사하는 것과 같아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과 같죠. 우리나라도 힘든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안녕’한 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꼭 묻는 것이 있어요. 몇 시에 만나든 물어봐요 ‘식사하셨어요?’라는 말이죠. 왜 물어보는 걸까요? 밥도 잘 챙겨 먹지 못할 만큼 어려웠던 때를 겪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샬롬’이라는 말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샬롬’이란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상태가 샬롬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화평한 것이 샬롬입니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한 것이 샬롬의 상태이고, 정신적으로는 근심이나 걱정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샬롬의 상태라고 말해요.

 

 우리 마음에 샬롬이 찾아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입니다. 현대인들은 하루, 하루 그냥 살아가는 것 같지만 왜인지 모르게 마음속에 찾아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 삶이 늘 평안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모든 하루 일과를 다 끝내고 잠자리에 누울 때 ‘아, 오늘 하루 참 평안한 하루였어.’ 하면서 잠에 드는 날이 많으면 많을수록 참 좋을텐데 실제로 우리 삶은 그런 날보다는 오늘 했던 실수들이 생각나고, 다음 날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 등을 곱씹으면서 잠에 드는 경우가 더 많죠.

 

 오늘 이 화평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눌텐데,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을 나누려고 해요. 첫 번째는 하나님과 나와의 평화이고, 두 번째는 나와 이웃들 사이의 평화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평화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그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품 안에 있을 때 안전하고,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십자가’를 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평화의 관계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평화가 없던 상태였다는 거죠. 무엇 때문에 그런 사이가 되었을까요? 죄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말해요.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시 평화의 사이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평안을 누리라는 말, 샬롬을 누리라는 이 말은 다시 말해 십자가 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면서 하나님과의 만남, 교제를 계속해서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진정한 평안,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과 염려들이 우리를 날마다 찾아오는데, 이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평안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난주에도 말했듯이,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나는 주변의 어려움과 두려움 때문에 낙심해서 쓰러져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내어주실 만큼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잠깐의 어려움이 나를 막 흔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가치를 깨닫는 사람은, 어려움 중에도 두 발 뻗고 자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두시고 보호하신다.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 하나님과 함께함을 믿기에 걱정 근심 중에도 하나님의 평안 아래에서 샬롬을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는 이웃과의 평화입니다.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반드시 우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화, 샬롬의 상태를 잃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깨어진 이웃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저도 읽은 책 중에 하나인데,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어떻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이죠. 이 책에서 참 중요한 대목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유를 누리는 방법이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래서 저자가 이렇게 얘기해요.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라고 말해요. 이 말은 남이 나에 대해 내리는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남이 나를 싫어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더 나아가 남이 나를 인정해주는 삶, 그 삶을 살기 위해 힘쓰고 애쓰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배울 점들이 많이 있죠. 그런데 저는 기독교인이고, 목회자이기 때문에 한 편으로 아주 작은 불편함이 하나 있어요. 결국 모든 것의 기준과 중심이 ‘나’로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나밖에 없다는 이 정신을 온전히 다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왜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만 생각하는 것이 진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 저자가 예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여기에 하나님 얘기를 안 넣었다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읽고 “아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나구나”라는 것만 깨닫고 끝내기에는 뭔가 아쉽다는 거죠.

 

 성경은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이 쓴 편지 중 하나인 골로새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다 함께 읽어보았으면 좋겠어요. 골로새서 3장 13절-14절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바울이 말하는 인간관계에서의 평화, 화평은 이래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을 때 그 사람을 용납해주고 용서해주라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용서해줘요? 바울이 말하는 근거는 예수님이 너를 용서해줬잖아.’라는 거예요. 기독교인들이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얼굴에서 나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때 그 사람을 용서해줄 수 있는 겁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기독교인에게 평화는 필수불가결의 사항입니다. 필수불가결, 무슨 뜻이죠? 꼭 있어야 하는 것,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것을 말하죠. 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평화라고 생각해요. 주고 받는 말의 평화, 세대 간의 갈등이 없어지는 평화, 남녀간의 갈등이 없어지는 평화, 지역과 지역의 다툼이 없어지는 평화. 이런 평화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부르심은 이것입니다. 세상에서 평화를 선포하는 사람이요. 쉽게 말해 피스메이커로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헨리 나우웬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평화 만들기는 모든 기독교적 임무 중에 가장 우선순위가 된다.”라고요. 우리는 늘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 평화가 언제 주어지느냐?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평화는 십자가를 건너갈 때 주어지고요. 나와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평화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볼 때 생기는 것입니다.

 

 평화의 길은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길이에요. 십자가의 본질이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가 저와 여러분의 삶에 충만히 맺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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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성령의 열매(희락)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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