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5) 자비 (갈라디아서 5:22-23)

728x90

성령의 열매(5) 자비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5) 자비 (갈라디아서 5:22-23)

 오늘은 다 같이 성경 한 구절 더 읽고 말씀을 함께 나누길 원해요. 누가복음 6장 36절입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돼라”

 

 여러분들 자비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나요? 주로 불교에서 자주 쓰는 용어죠. 그래서인지 자비라는 단어를 들으면 교회가 먼저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 그중에서도 불교적인 것부터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말하는 자비는 어떤걸까요?

 

 타 종교에서 자비를 통해 복을 받는다고 말해요. 자비는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조건이 없는 베풂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랑하는 마음과 조건이 없는 베풂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걸까요? 타 종교에서는 ‘수행을 통해 마음을 비우면’ 생긴다고 하죠. 그러면 그 마음을 한 번 비우면 영원히 비워진 채로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연약해서요. 비워진 마음에는 탐심과 욕심이 먼저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말하는 자비는 타 종교와 무엇이 다른 걸까요? 기독교에서의 자비를 말할 때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단어가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와 자비를 꼭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들 은혜와 자비가 뭘까요?

 

 은혜는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이 은혜고요. 받아야 할 것을 안 받는 것이 자비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햄버거를 먹는다고 칩시다. 맥도날드에 갔다고 쳐요. 여러분들 맥도날드 햄버거 뭐 좋아하세요? 저는 맥도날드는 더블 쿼터파운드 치즈, 맘스터치는 햄치즈 휠렛 버거, 롯데리아는 새우버거 저는 딱 정해놓고 이거만 먹어요. 뭐 아무튼간에, 햄버거를 먹으러 갔어요. 여러분이 돈을 주고 햄버거를 사고, 햄버거를 받았어요. 이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햄버거를 샀는데, 햄버거와 함께 피규어를  그냥 주네? 이건 뭐에요? 이것이 은혜입니다.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자비는 뭘까요? 이런 거죠. 여러분이 학교에서 학교 규정을 어겼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다른 지역은 모르겠고 수원지역은 반삭만 가능했어요. 그것도 18미리, 여자는 귀밑 3센티. 이게 규정이었습니다. 근데 머리가 자라잖아요. 남자애들 몰래몰래 구레나룻 조금 기르고, 뒷머리 조금씩 길러요. 그런데 그렇게 가다가 복도에서 학생주임 선생님을 만났네? 근데 이 쌤이 머리를 이렇게 싹~만져보더니, 흠.. 하고 그냥 봐주고 지나가는 거예요. 이건 뭐예요? 이게 자비죠. 무단횡단을 하다가 경찰한테 걸렸어요? 경찰이 딱 와서 보니까 학생이에요. 학교 늦어서 뛰어가다가 그랬어요 죄송해요 하니까 경찰이 봐줘요. 이게 뭐예요? 자비죠. 받아야 할 것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 자비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단순히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런 자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자비는 뭔가요? 우리는 받을 수 없는 어떤 걸 받았나요? 우리는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된 자, 진노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니까요.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어요.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다시 우리에게 주셨어요. 이게 뭐에요? 은혜죠. 그로 인해 우리는 받아야 할 것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안 받았습니까? 심판을 안 받게 되었죠. 사망에서 벗어난 사람이 된 겁니다. 이게 뭐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뭐라고 부럽니까? 자비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세요. 이게 자비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자비의 두 번째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들 자비가 영어로 뭐죠? mercy입니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성경에서는 자비를 mercy라고 번역하는데, 오늘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자비를 NIV 영어성경에서는 mercy라고 번역하지 않아요.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kindness. 친절이라고 번역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통해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면 그때부터 성령님이 계시는데, 그로 인해 나타나는 열매로서의 자비는 친절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죠? 성령의 열매는 관계성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비롭게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이것이 근거가 되어서 우리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친절을 베풀어야 해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친절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해요. 기독교인이 착해야 한다,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말하면요. 그럼 바보처럼 살라는거예요? 라고 말합니다. 바보처럼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친절의 뜻이 뭔가요? 대하는 태도가 정겹고 고분고분하다.라고 말해요. 태도의 문제입니다. 말이나 행동이 부드러운 것이 친절한 겁니다.

 

 

 요즘 저와 여러분이 겪고 있는 이 사회는 어떻습니까?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어줍니까? 서로에게 친절합니까? 예전보다 많이 각박해지고 싸늘해졌죠. 청소년들이나 직장인들이요, 치열한 경쟁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여기서 탈락하면 낙오자가 된다고 느낍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우리를 절망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어디서 우리가 이걸 가장 잘 느낍니까? 인터넷 문화 안에 이게 잘 녹아져 있죠. 인간에 대한 존중이 별로 없어요. 무자비해졌습니다. 친절은 사라졌습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뭔가 내가 심판을 내려도 되는 사람인 양 막 키보드를 두들깁니다. 너는 죄인이야, 너는 잘못했어, 나락, 나락 하면서 막 깎아내리는겁니다. 최근에 이슈였던 유튜브 콘텐츠 여러분들도 아실 거예요. 머니게임이 있었죠. 유명 유튜버들이랑 해서 나와서 하는데 저는 다 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에 보니까 뭐 난리인 거예요. 누가 잘했니 잘못했니 사과를 하라느니 말라느니 서로 막 죽일 듯이 그러는 거예요. 그거 보면서 이런 마음이 들어요.

 

 정말 잘못했을 수도 있죠. 나쁜짓을 했을지 몰라요. 그런데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마음속에, 자비와 긍휼,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어디에 있냐는 겁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더 마음에 여유가 있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자비로워지기를 원하세요. 이 자비로운 마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은 언제 생기는 걸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요. 십자가를 바라볼 때 생깁니다. 내가 얼마나 큰 자비를 받았는지를 깨닫는 만큼 남에게 자비로울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큰 자비하심을 경험했는지를 깨닫는 만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친절한 마음과 포용력이 생기는 겁니다.

 

1편 - 성령의 열매(사랑) 바로 가기

2편 - 성령의 열매(희락) 바로 가기

3편 - 성령의 열매(화평) 바로 가기

4편 - 성령의 열매(오래참음) 바로 가기

6편 - 성령의 열매(양선) 바로 가기

728x90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