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9) 절제 (갈라디아서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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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9) 절제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9) 절제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아홉 번째 열매는 절제입니다.  아홉 번째 열매인 절제는 가장 마지막에 나오지만 사람에 따라 절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나머지 열매들을 맺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열매가 절제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절제에 대한 말씀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절제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절제가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유혹하는 그 욕심들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식탐, 성욕, 식욕 등 사람 안에 있는 욕구를 컨트롤하지 못하면 거기에 넘어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만 무너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집니다. 결국 사회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절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끊기 어려운 욕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욕구들이 자라나서 통제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고 부릅니다. 절제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욕구들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 중독으로 가는 길을 막는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근데 절제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저도 계속 식탐을 조절하지 못해서 살이 뒤룩뒤룩 찌고 있습니다. 지금 목사님과 같이 30일 챌린지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알 거예요. 30일 챌린지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사실 얼마 안 되거든요. 그런데 그 시간을 지켜서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해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을 위해 다른 것들을 절제하고, 끊어내고, 밀어내야 하는데 그게 안 돼서 그런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절제의 포인트를 하나 찾을 수 있습니다. 절제가 힘든 이유는 바로 목표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절제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절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목표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절제의 포인트를 잘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목표를 위해서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표의식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대표적으로 운동선수들은 절제를 합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자는 것 등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절제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함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중요한 시험이나 수능을 앞둔, 때로는 실기를 앞둔 여러분들과 같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절제를 합니다. 어떤 것을 절제합니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영화, 예능, 유튜브 이런 것들을 절제하면서 공부에 힘씁니다. 여러분도 그러시죠? 내가 혹시나,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면, 나의 목표의식을 점검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인생을 육상경기로 비유했습니다. 천국이라는 골인(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을 신앙생활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결승점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왜 마라톤 경기를 보면 달리다가 중간에 물도 마십니다. 혹시 그 장면 보셨습니까? 거의 입에 음료를 던지듯이 하고 가잖아요. 혹시 거기서 잠깐 쉬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지는 것처럼 하는 사람 봤습니까? 그건 목표가 없는 사람들이죠. 모두가 완주를 위해, 또 좋은 성적으로 끝까지 달리기 위해 그 힘든 순간에 찾아오는 꿀맛 같은 시간을 빠르게 보내고 지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표의식을 가진 사람의 자세인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며 이겨내며 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절제의 두번째 포인트는 바로 집중력입니다. 절제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중력입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에게는 뜨거운 태양이 날마다 뜹니다. 그런데 그 태양 때문에 일상에서 불이 나는 경우는 없죠. 그런데 그 태양 빛을 받아 돋보기로 한곳에 집중하면 불을 냅니다. 절제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불필요한곳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자제하고, 한 곳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래야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절제의 세번째 포인트는 바로 정체성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정확히 깨닫는 자가 절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올림픽 대회에 나온 선수라는 정체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다른 불필요한 것들을 절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절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거예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자기 정체성을 몰라서 절제하지 못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삼손이라는 인물입니다. 삼손의 정체성이 무엇이었을까요?

 

사사였습니다. 그리고 구별된 나실인으로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그때 당시의 사사는 한 시대를 책임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이스라엘의 한 시대를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절제하지 못합니다. 결국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면 절제하기란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여러 정체성이 존재합니다. 

 

먼저는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때 해야 하는 것들을 하는 겁니다. 이 정체성을 까먹으면 학생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다니겠죠. 우리는 그것을 보고 무절제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우리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즉 세상에서 살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왜 절제가 성령의 열매냐면, 성령님은 절제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성령님 맘대로 우리를 조종하지 않으시고 참고 기다려주십니다. 그래서 가끔은 "성령님은 깨끗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신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더러운 욕심과 생각 때문에 참 곤욕스러우시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악한 모습을 보시고 충분히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에게 분노를 내실 수도 있지만 절제하고 계신 분이세요.  만약 성령님께 절제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이렇게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절제의 영이신 성령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늘도 살고 있는 것이고,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절제의 영이신 성령님과 함께 우리 또한 점점 더 절제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편 - 성령의 열매(사랑) 바로 가기

2편 - 성령의 열매(희락) 바로 가기

3편 - 성령의 열매(화평) 바로 가기

4편 - 성령의 열매(오래참음) 바로 가기

5편 - 성령의 열매(자비) 바로 가기

6편 - 성령의 열매(양선) 바로 가기
7편 - 성령의 열매(충성) 바로 가기

8편 - 성령의 열매(온유) 바로 가기

마무리 - 성령의 열매 묵상 나눔지(2부 순서, 분반공부, 학생용) 바로 가기

 

[나눔 자료] 성령의 열매 시리즈 설교 후 묵상 나눔자료

성령의 열매 시리즈 설교가 끝난 후에는 그동안 해온 설교에 대한 중요 포인트 정리와 함께 분반공부 시간에 활용하기 좋은 묵상나눔지를 나누어줍니다. 2부순서로 교사와 함께 묵상나눔을 한

hans-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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