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8) 온유 (갈라디아서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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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8) 온유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8) 온유 (갈라디아서 5:22-23)

 

 오늘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온유의 열매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여러분들은 '온유'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세요?  대부분 사람들은 온유를 '어떤 상황에도 화를 내지 않고 무조건 참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온유에는 그런 뜻이 있지만, 그러나 온유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온유의 진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이 온유하다고 말할까요? 성경에 온유하다고 등장하는 사람이 몇 명 없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모세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서 모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는 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만약 온유의 의미가 어떤 상황에도 무조건 화를 내지 않고 참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이렇게 모세를 평가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행전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4절, 25절 말씀입니다.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당시 40살 정도였던 모세는 신분이 아주 높은 애굽의 왕자였습니다. 근데 이때 한 생각이 드는거예요. 자기의 동족인 히브리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땅에서 핍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모세가 이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권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세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애굽의 왕자입니다. 힘과 권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기 전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뭔가 착각한 거죠. 자신이 애굽 사람을 죽이면 자기 동족 사람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지도자로 추대하고, 그로 인해 대단한 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어떻게 끝났을까요? 모세의 뜻과는 반대로 실패로 끝납니다. 그래서 모세는 애굽을 떠나 광야로 도망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의도하지 않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죠.

 그 곳에서 40년을 양치기로 보내면서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신약의 사도바울과 같은 케이스죠.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부르시기 전까지 사도바울은 유대교 전통과 관습에 따라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죽이고 그랬습니다. 마찬가지로 모세도 애굽에서 배운 전통과 관습에 따라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의 왕자로서 같은 애굽인을 죽인 것은 그가 실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 법에 따라 더 이상 그의 애굽의 왕자로 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순간의 실수 즉 살인죄 때문에 그는 애굽의 왕자라는 엄청난 신분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고, 광야에서 40년동안 양치기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온유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화를 참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모세는 온유한 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모세가 자기 분을 못 참고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죠. 그런데 왜 하나님은 모세를 온유한 자라고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부르신 이후의 삶을 보시고 말하는 것입니다. 온유함을 다르게 말하면 "자기가 지닌 힘을 사용하지 않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온유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후의 모세의 삶을 보면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학자마다 다르지만 대략 200만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세의 지팡이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생각해보세요. 모세가 그 지팡이를 들고 바위를 치면 바위에서 물이 나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를 들고 기도하니까 홍해가 싹 갈라집니다.

 

 제가 만약에 지금 여기 있는 볼펜을 들고 모세와 같은 기적들을 행하면 어떤 마음이 들 것 같나요? "우와, 갖고 싶다." "저거 대단하다." 이런 생각 안 들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 지팡이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이것만 있으면 다되네?" "이거 대박인데?"

 

 그런데 모세는 어떻습니까? 모세는 열 가지 재앙뿐만 아니라 홍해가 갈라지는 여러 가지 기적들을 보면서도, 능력의 지팡이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쉽게 말하면 힘과 능력과 권세가 모세의 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며 나아갑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온유의 특징입니다.

 내가 무조건 화를 참고 넘어가는 게 온유가 아닙니다. 나에게 힘이 있고 권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도 그걸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쓰지 않는 것이 온유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힘과 능력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 온유함입니다.

 

 마치 이런겁니다. 여러분들 유치원생이 저에게 와서 막 놀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저에게는 그 꼬마애를 무력으로 제압할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런 것이 온유함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온유함의 모습은 예수님에게서도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쉽게 말해 힘이 있습니다. 멍에가 이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걸 같이 메라는 거예요. 이거 지금 뭐예요?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끌고 갈게." 이거예요. 우리는 그냥 예수님이 메주 시는 멍에를 걸기만 하고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게 온유함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열매로써의 온유함은 이것입니다. 먼저는 화를 참는 것, 그 다음은 내가 가진 힘과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서는 그 힘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 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맺히는 열매는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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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성령의 열매(희락) 바로 가기

3편 - 성령의 열매(화평) 바로 가기

4편 - 성령의 열매(오래참음) 바로 가기

5편 - 성령의 열매(자비) 바로 가기

6편 - 성령의 열매(양선) 바로 가기
7편 - 성령의 열매(충성) 바로 가기

9편 - 성령의 열매(절제) 바로 가기

 

성령의 열매(9) 절제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9) 절제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아홉 번째 열매는 절제입니다. 아홉 번째 열매인 절제는 가장 마지막에 나오지만 사람에 따라 절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

hans-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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