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모음] 아브라함과 이삭 (창세기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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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음] 아브라함과 이삭 (창세기 22:1-14)

[설교 모음] 아브라함과 이삭 (창세기 22:1-14)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뭐가 있을까요? 부활이라는 요소도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자기가 전파하는 것이 헛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십자가 사건이 있죠.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에서 의인으로,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에 십자가 사건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중요한 걸 따져보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삼위일체도 그렇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등등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을 우리가 ‘믿느냐’ 라는 것이죠.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너희의 믿음이니라"

 

 또 예수님에게 다가온 중풍병자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며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히브리서 기자는 뭐라고 말합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만큼 우리들에게 믿음은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할 수 있고요, 믿음이 있으면 세상에서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이 아브라함은 훗날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대체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요?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들은 아주 유명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많이 아시는 말씀이지만 한번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독자, 이삭을 바치라” 말은 사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정말 충격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명령해 준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참 마음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향과 아버지의 집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때 당시에는 씨족사회였고, 부족사회이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라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친척과 아버지의 집도 마찬가지죠.

 

 

 요즘 같은 때에 아버지의 집을 떠나 사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이때만 해도 아버지의 집을 떠나 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라고 할 때에도 순종하고 떠났던 것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근데 그 약속을 하실 때 아브라함에게 거셨던 조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민족을 이루게 해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땅의 모래만큼 하늘의 별만큼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아브라함은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100세에 낳은 귀한 아들인 이삭을 바치라니요.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파기하는 행동이라고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고작 한명 줘놓고 그 한명마저 가져가시겠다고 하시니 어찌 마음이 찢어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듣고 곧바로 행동에 옮깁니다. 여기서 믿음의 중요한 특징이 하나 나오는데 바로 '반응'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늘 반응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 위로 올라간 삭개오를 보시고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삭개오의 반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팔아서 어려운 사람에게 갚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있던 한 여자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믿음이 있던 나병환자 한 명은 다들 나병이 고쳐진 것을 알고도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았지만, 한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의 인사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는 늘 반응이 따른 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반응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찌 되었든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것을 요구하셨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즉각 반응하였습니다. 새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산에 올라갑니다. 제사 드릴 준비를 해서 산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산 위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눕혀놓고 칼을 빼어 이삭을 잡으려고 하니 갑자기 하늘로부터 음성이 내려와 아브라함을 말립니다. 제사에 필요한 숫양을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셨다고 하여 <여호와 이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1. 곧바로 순종하는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즉각 순종하였던 믿음이었습니다. 이리저리 따지고 보면 이삭을 바칠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었고, 하나님이 대대손손 자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좀 오락가락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도, “아닐거야”라며 부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믿음은 곧바로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2.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가고 있는데, 이삭이 묻습니다. "불과 칼은 있는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자, 아브라함은 올라가면서 이삭에게 대답해줍니다. 우리가 제사드릴 양은 하나님이 준비하셨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아들 이삭을 잡기 전에 둘러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믿음으로 하는 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예비한 양을 주시고, 그를 축복하시사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이 가졌던 이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근데 중요한 것이 하나 남았습니다. 바로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은 어찌해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는데, 이삭은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제가 처음 성경을 통독하고자 읽었을 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무슨 죄야?” 이삭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부모의 신앙에 이끌려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더군다나 본인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쓰일 나무 장작을 본인이 들고 갑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 이삭에게 나타나야 할 병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트라우마>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이삭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보면 정말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제사를 드리러 가자고 합니다. 알겠다고 따라 나선 이삭에게 나무를 지어줍니다. 나무를 메고 산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도무지 번제할 양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의심도 잠시, 일단은 산 위로 묵묵히 걸어갑니다. 산 위에 올라가서 갑자기 아버지가 변합니다. 갑자기 이삭 자신을 묶고 칼로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어찌됐든 살긴 살았지만 그 기억은 이삭의 머릿속에 오랜 기간 남았을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제단에서 내려온 이삭은 아브라함의 멱살을 잡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따졌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아브라함보다 이삭의 힘이 더 강했을 것입니다. 보통 학자들이 이때 당시 이삭의 나이를 16세 전후로 보는데,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20세가 가까운 나이라는 것이죠.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만한 힘이 있던 이삭이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 때 당시에는 14살이면 결혼도 하는 때였기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현재 중학생 아이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어른이죠.

 

이런 이삭에게는 평생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자기에게 칼을 대려고 했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의 얼굴만 봐도 놀랬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제사드리러 가자"라고 하기만 해도, 그때의 기억이 또 떠올랐을 것입니다. 평생에 트라우마로 이삭은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도 하나님이 크게 사용 하사, 아브라함을 잇는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반열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삭이 가지고 있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바로 용서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이삭이 용서의 믿음이 없었다면, 이삭은 아브라함을 내치고 살았을 것입니다. 이삭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이 용서도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없다면 우리도 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를 이은 민족의 지도자로 살게 됩니다.

 

말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 이삭처럼 용서의 사람으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믿음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합당한 큰 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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