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모음] 성문 밖으로 가야합니다 (히브리서 1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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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음] 성문 밖으로 가야합니다 (히브리서 13:9-16)

[설교 모음] 성문 밖으로 가야합니다 (히브리서 13:9-16)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교리들 중에서 믿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론이라고 해서 하나님에 관한 것도 있을 것이고, 교회에 대한 교회론도 있을 것인데, 그 중에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알고, 또 제일 많이 전하는 교리는 바로 ‘구원’과 관련된 교리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대속에 교리를 제일 많이 이야기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십자가가 교리적 신념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핵심은 십자가는 ‘무엇’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 ‘누구’라고 말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만나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또 많은 군중들을 향해 자신이 살았던 대로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우리에게도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이란 세속적인 욕망과 모든 욕망들을 못 박아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그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십자가를 믿기는 하지만 십자가를 살아내지는 않는 모습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는 보는데, 십자가를 따르지는 않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 결과 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는 말을 듣고 있는 현실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이 지역에 교회가 모두 사라진다면, 교회 다니는 교인들 외에 그것을 아쉬워할 사람이 있을까요? 이 질문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번 들리는 이야기는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들뿐입니다. [한국교회 미래지도 2040] 책을 써낸 최윤식은 암울한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기술사회가 점점 발전해나갈 수록 사람들은 감성에 목마르게 될 것이고, 사회가 더 위험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성찰할 것이고, 중소도시나 농어촌의 인구 대이동이 예상된다고 말하면서 아직까지는 종교에 사람들이 희망을 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향후 10년간이 한국교회의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실은 아주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 중고등부 아이들이 함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한 가지 성도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어른들은 한국교회의 대 부흥을 시대와 함께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던 것도 우리 어른 성도님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겪게 될 한국 교회의 모습은 추락하는 모습입니다. 욕먹는 모습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주축이 되고 있는 4-50대들이 은퇴하는 시기인 2030년을 기준으로 한국 교회는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학생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탈기독교’‘탈기독교’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를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를 이 학생들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한국교회미래지도 라는 책에서는 2050년이 되면 한국교회 성도가 3-400만으로 줄어들고, 주일학교는 3-40만으로 축소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10년 종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데, 가장 신뢰하는 종교 1위는 가톨릭이 47%로 1위가 되었고, 그 뒤를 이어 불교가 38%를 얻었습니다. 기독교는 12.5%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위기적 상황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의 영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영성이 무엇입니까? 낮아지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더 낮은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런 삶을 우리 예수님이 사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말씀을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속죄 제물로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절, 12절 말씀에 보면 속죄제물의 피는 대제사장이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태운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영문,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성문 밖이었습니다. 성문 밖은 어떤 곳입니까? 제사를 드리고 난 찌꺼기들을 버리는 곳입니다. 영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버린 분뇨와 쓰레기들을 태우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돌로 쳐 죽여야 할 때 영문 밖으로 끌고 나가서 죽입니다. 영문 밖에 있는 사람들은 영문 안에 머물 수 없는 죄인들과 병자들이 쫓겨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더럽고, 가장 부정한 곳으로 가신 것입니다. 스스로 영문 밖에 사람이 되셨습니다. 스스로 부정한 자의 위치에 가셨고, 쓸모없는 자가 되셨고, 죄인과 병자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을 놓치며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문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넓은 길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으시고, 영문밖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영문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문 밖에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영문 밖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고 있는가?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있는가? 예수님이 당하셨던 치욕은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는 치욕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약함과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말하면서 그다음에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이것이 기독교가 가진 힘입니다. 믿으십니까? 약함과 어리석음이 강함과 지혜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회도 변화해야 합니다. 이전까지의 교회는 방주형 교회였습니다. 사람들이 ‘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었습니다. 방주처럼, 사람들이 ‘와야’ 구원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야’합니다. 영문 밖으로, 성문 밖으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보냄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제자들을 양육하시고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보냄 받은 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이제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 그곳에 계신 주님과 함께 많은 이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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