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Win] 성령이 세상을 이긴다 (롬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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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Win] 성령이 세상을 이긴다 (롬 8:1-2)

 

[Holy-Win] 성령이 세상을 이긴다 (롬 8:1-2)

 

 할렐루야! 오늘도 너무 잘 왔어요. 오늘은 holy-win 세 번째 시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나면 경험하게 되는 영적인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해서 민감해진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요 삶의 주인으로 모시기 전에는 죄에 대해 인지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스스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죄를 쫓고, 죄를 즐기기 바빴을 것입니다. 혹은 죄를 지어도 아무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아주 기초적인 양심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죄에 대해 인지하기는 하지만, 그 작은 양심도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죄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지 못합니다.

 

 쉽게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적어도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기초적인 매너를 학습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립니다. 지난주에 여기 교회 주차장에 어떤 어린 학생이 쓰레기를 버리고 그냥 가더라고요. 여러분 교회 주차장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쓰레기통이 없어요.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면서 눈치를 봅니다. 보는 사람이 있나? 없나? 확인합니다. 왜 그럴까요?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양심이 찔리기 때문이죠. 인간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 양심이 작동합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있는 상태에서의 그 양심은 자기 중심적으로 발동합니다. 그러면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나요? “뭐 어때?”라는 결론이 도출되는거죠.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어떻게 바뀌게 됩니까? 죄에 대해 민감해집니다.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는가 안 버리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일말의 양심이 자기중심적으로 발동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발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모범적인 생활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한번에 바뀌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성령의 음성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붙잡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나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영적인 민감도가 상승하는 겁니다. 그렇게 민감하게 성령님의 음성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을 보고 ‘성령에 충만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민감함이 너무나 지나친 나머지 죄책감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다가 아주 작은 죄만 지어도 자책에 빠지는 거예요. 더 나아가 하나님께 징계나 심판을 받을까 조마조마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시면 어쩌나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러한 걱정과 고민이 틀렸다고 말해요. 뭐라고 말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복음 안에 내가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부터 죄를 짓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혹은 '나는 연약해서 죄를 짓는 존재니까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은 포기하겠다'는 말도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나의 연약함의 원인과 또한 연약함 때문에 짓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인간의 본성 안에 숨겨진 죄의 힘이 너무나 강력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 아니겠습니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의 사도바울조차도 여전히 죄의 법이 나를 묶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평생을 처절하게 자신의 죄와 계속해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시지 않았더라면 자기 인생은 도무지 소망이 없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죄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성령님께서 지속적으로 깨끗하게 해주시는 은혜 외에는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며 묶여 있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책감을 가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해주실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내가 앓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나같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내가 죄인된 모습, 부끄러운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바울도 자기 안에서 죄와 성령이 처절하게 싸우는 듯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다시는 정죄함이 없다는 복음의 원리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자아가 산산히 부서질 정도로 죄에 대해 탄식하면서 예수님밖에 없음을 고백한 사람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사도바울과 같은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죄인 줄 알면서 짓는 죄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그거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는 때가 너무나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우리보다 앞서 고민한 사도바울이 말한 해결책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해방시켜준다는 거예요.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성령님이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하십니까? 물론 너무 민감해서 아까 말한 것처럼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욱 문제는 죄가 죄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살아가면서 고민이 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지 아닌지 고민하게 될 순간이 생길 것입니다. 즉 이것이 내 뜻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구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믿기는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여러분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시는 마음에 순종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인데, 창세기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승리하게 하실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여러분 안에서 성령의 법이 계속해서 승리하도록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죄에 끌려다니는 인생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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