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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으로 사는 삶 (예레미야 31:31~34)

한세현의 믿음톡톡 2023. 7. 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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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으로 사는 삶 (예레미야 31:31~34)

예레미야의 이야기

 예레미야 선지자는 아나돗 태생의 제사장이자, 요시야 13년(기원전 627년)에 활동을 시작했고,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요호야긴, 시드기야 왕 시대에 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아시리아의 멸망과 바벨론의 부흥이라는 서아시아의 정세변화와 이로 인해 유다가 멸망한 시대에 살았고, 망명자들에 의해 강제로 이집트에 끌려갔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마지막 설교인 예레미야 44장은 이집트에서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는 스바냐, 하박국, 다니엘, 에스겔과 동시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627년부터 580년까지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침략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강력한 설교 내용으로 인해 심한 박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윗 왕조와 맺으셨다는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이에 예레미야는 너희가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죄를 짓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유다 백성들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심판의 메시지만 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희망과 회복의 메시지도 함께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새 언약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실 새 언약의 약속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새 언약이라는 말은 옛 언약도 있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옛 언약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십계명과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세워진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은 이제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을 정리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두 가지 모두 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곁을 떠났고, 우상숭배를 일삼으며 하나님과 맺은 십계명의 언약을 모두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결국 남은 것은 껍데기만 있는 형식적인 종교생활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전의 옛 언약과는 다른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는 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즉 새 언약은 어떤 외적인 종교 행위나 법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에 중점을 두는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의미로 33절 말씀을 보면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제는 종교적인 의식이나 외적인 관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신앙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생각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새로운 관계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새로 맺을 언약은 마음에 중점을 두는 언약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생기는 새로운 변화는 무엇일까요? 33절 말씀에 힌트가 있습니다.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깊고 새로운 친밀한 관계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전에 언약은 어땠습니까? 십계명과 율법이라는 법에만 의존했습니다. 따라서 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 아주 간단한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옛 언약으로는 도저히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어떤 법이든 피해 갈 구멍을 만들고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학생들 보고 담 넘어가지 말라고 하면 담 밑에 개구멍 파서 다니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법과 제도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겉모양만 있을 뿐,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적인 종교생활만 남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에도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일이나,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는 일들에 대해 예수님께 따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옛 언약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을 그저 법과 의무로만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2023년 현재,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적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제는 율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와 같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중재하는 중재자를 의존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이 직접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이제는 우리가 제사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선지자를 찾아가지 않아도 각자 개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공부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의 관계, 법과 제도로 가려진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 죄를 기억하시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에 따르면 악한 일을 행하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고, 그 죄는 기억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죄를 기억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 누구를 보내주셨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새 언약을 통해 율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와 같은 중간 매체를 통해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믿음에 따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죄악을 도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용서와 회복을 통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용서와 회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다가도 멀리 빗나가든, 어떤 실수를 저질렀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용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 관계들 속에 죄를 지어도, 때로는 감정의 죄를 지어도, 때로는 과거에 어떤 죄가 있었더라도 하나님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에게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떠한 죄책감이나 수치심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에게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와 회복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를 그 거룩한 품으로 안아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본질은 어떠한 규칙이나 의식이나 종교적 의식이나 법과 같은 단순히 외적으로 보이는 것을 준수하는 것보다, 내면의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외면을 변화시키시기보다 개개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기록하셔서 이제는 의무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의무로 하게 되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의무로 하게 되면 마음의 진정성도 사라지게 됩니다. 연인 관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녀가 서로를 대할 때 의무적 관계로만 대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관계는 매우 무미건조한 관계가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서 서로를 대해야 건강한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항상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존경하고 따를 때에도 의무적으로 그 사람을 따라야 하는 경우는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르는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하여 목숨도 내어놓기도 합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마음의 차이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의무로 대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곤욕일 것입니다.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 헌금 생활하는 것, 헌신하는 것, 봉사하는 것 등등 이러한 모든 신앙생활을 의무감으로 하는 사람은 반드시 번 아웃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습니다. 사랑이 그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게 될 때 우리 삶에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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